이토록 즐거운 클래스

펜과 붓으로 순간을 붙잡으며

채워가는
나의 시간

역삼1동복합문화센터 어반스케치1

writer. 조서현 photo. 김도형

도시의 거리나 건물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는 여행지의 잊지 못할
추억부터 일상에서의 사소한 풍경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상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다. 역삼1동복합문화센터에서는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또는 무심했던 삶의 빈 공간마저 아름답게 꾸미고
물들일 수 있도록 어반스케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삶을 포착하는 연습, 어반스케치 수업

  • 마음마저 고요히 가라앉히는 봄비가 내리는 어느 오전, 어반스케치 강의가 열리는 역삼1동복합문화센터 4층 문화교실의 클래식 음악 선율이 수강생들을 부르고 있었다. 하나둘씩 자리에 앉아 준비물을 꺼내든 이들은 반짝이는 눈과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만으로 교실을 어느새 화실로 변하게 만들었다.
    이곳 역삼1동복합문화센터의 어반스케치 강의는 관찰과 묘사의 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습과정으로써 회화의 기본에 집중한다. 처음엔 여행하며 간단하고 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들이 문을 두드리지만, 점차 수채화를 그리는 것에 욕심을 내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강의를 이끄는 김주희 강사는 이러한 수요에 맞게 어반스케치의 기본부터 추후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수채화 기법까지 지도하고 있다.
    “수강생의 실력과 목적에 따라 추구하는 활동이 다르시기에 개별적으로 지도해요. 물론 구도와 색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명암에 대한 입체감 연습, 형태와 비례 포착, 양감과 질감 표현 연습은 공통으로 진행하죠.”
    어반스케치는 어떤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느낌을 담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난감해하는 이들에게 기초적인 기능부터 알려주지만, 결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강조하거나 생략하고 싶은 부분은 생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주력한다.
    교실의 맨 뒷자리 스케치 단계에서 골몰하는 수강생 박선동 씨 또한 이러한 점을 잊지 않고 내면의 상상력에 집중하곤 한단다. 그는 한창 마른 나뭇가지와 대문이 있는 일상적이지만 다소 쓸쓸한 풍경을 들여다보며 이를 묘사하기 위해 연필을 쥐고 있었다.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느낌과 제가 이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느낌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문으로는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나뭇가지는 잘린 것인지 여러 생각을 떠올리죠.” 오늘 안에 끝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박선동 씨의 스케치는 평면을 넘어 더 풍부한 세상을 담고 있는 듯했다.

마음속 잔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

“이 부분은 좀 강하게 채색하면 어떨까요?”, “이쪽은 좀 가볍게 날리면서 노란 색감을 추가해 주는 게 좋겠어요.” 수업이 진행되며 눈앞의 그림에 푹 빠져있는 수강생들의 곁을 맴돌며 김주희 강사의 핵심 코칭이 이어진다. 이를 들은 누구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넌지시 추가 질문을 던지기까지 하며 진정 모범생의 면모를 보였다. 중간중간 “이 부분은 정말 잘하셨어요”, “확실히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라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나올만했다.
한편 3년째 이 수업에 나오고 있다는 이명덕 씨는 지난해 11월, 졸업 50주년을 맞아 동창들과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서 찍은 한 사진을 두고 큰 도화지를 채우는 중이었다. 사진 속에는 장엄한 설산을 지붕 삼고 호수를 마당 삼아 고즈넉하게 자리한 작은 교회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풍경에 반해 작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째, 이명덕 씨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가, 아직도 완성을 못 했어요. 평소보다 크게 그리려니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라며 웃어 보였다. 본래 중심에 자리한 교회를 포인트로 삼아 그리려 했지만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설산을 강조하기로 해 스케치 단계에서 세 차례나 교회 크기를 줄였단다.

끝까지 완성해 내는 한 폭을 위해서

자연물을 그리고 있는 이가 많은 어반스케치 수업에서, 봄꽃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계절임에도 아직 가을의 정취에 머무르고 있는 선연희 씨의 그림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빛 낙엽의 생생함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 이 그림에서 실제로 선연희 씨가 고전하는 부분도 그러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잖아요. 어떻게 표현해야 나무 본연의 생명력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다 문득 선연희 씨는 본인의 스케치북을 들춰 조심스레 한 문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다’라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었다.
“선생님이 제게 첫 번째로 내어주신 숙제가 바로 명과 암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었거든요. 저는 인생에서도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창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이젤 위 시원한 계곡을 그리고 있는 정태원 씨 또한 그림을 통해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된 듯했다.
“계곡물은 위에서부터 내려와 아래로 모이게 되잖아요. 우리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 살아가다 흘러 흘러 결국 한곳에 모두 모이게 되는데, 이런 점에 있어 물과 사람이 비슷하다고 느껴요. 우리도 흐르고 또 모이는 물처럼 같이 잘살아 보자는 교훈이 담겨 있달까요?”
결혼 후 아이를 돌보는 등 살기가 바쁘다는 이유로 미술과는 멀어졌었다는 정태원 씨는 우연한 계기로 그림의 세계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파지가 아까워 뭐라도 끄적이다 보니 한 장 두 장 그림이 쌓여 갔고 그 시도들이 결정적으로 정태원 씨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살림만 하다 보니 사회생활을 할 때의 제 능력 같은 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내가 할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느꼈었는데 그래도 연필과 붓을 잡으면서 나도 한가지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완성된 정태원 씨의 작품이 칠판에 걸리자 사람들은 “저도 저 계곡에 있고 싶어요”, “보기만 해도 제 속이 다 시원해지는데요?”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선생님의 몇 번의 손길로 굴곡진 물결의 생동감이 더욱 살아난 터였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돼요”라는 김주희 강사의 말마따나, 연필과 붓을 믿고 의지하며 끝까지 자신만의 화폭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어반스케치. 이날 수강생들이 보인 끈기와 열정은 이들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데 진정한 힘이 되어주고 있는 듯했다.#

‘어반스케치’ 수업이 나에겐?

  • 김은희 | 도곡동


    여행을 다니면서 펜으로 풍경을 그리고 싶어서 찾아왔었어요. 그런데 계속 배우다 보니까 색을 입히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서 처음에 색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조금 만족할 만한 수준을 갖춘 것 같기도 해요. 나중에는 꼭 여행 사진을 묘사하고 싶어요.

  • 선연희 | 역삼동


    6개월 정도 그림을 배우면서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얼굴에서의 포인트, 어떤 매력적인 부분을 포착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점에서 기억력을 높일 수 있고 인지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집에만 있으면 무료했을 텐데 수업 때문이라도 집 밖을 나서니 이 수업이 일상의 돌파구라고 느껴집니다.

  • 김영기 | 개봉동


    오늘은 뱃놀이 풍경을 그렸는데요. 수업에 나와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확실히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2~3년 전 주변의 권유로 나왔던 것인데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님에도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알려주셔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 이명덕 | 역삼동


    학창 시절 미술 과목은 ‘양’, ‘가’ 성적만 받는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주변에서 제 그림이 갖고 싶다고, 벽에 걸어놓겠다는 사람들도 생긴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합니다. 남이 제 그림을 좋아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예상 밖의 일들에 요즘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 김경선 | 역삼동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그림을 배워보려고 여기 오게 됐는데요. 학교 다닐 때도 그림을 그리고 싶긴 했었는데 먹고살기에 바빠서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어요. 다양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정태원 | 역삼동


    지금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림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정말 ‘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런 화가가 되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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