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떠나는 여행

관현악의 연금술사

모리스 라벨

19세기 프랑스 파리는 서양 예술사의 가장 아름다운 시대 중 하나였다. 반짝이게 아름답던 예술가들의 시절,
모리스 라벨은 자신만의 마법을 연주했다. 피아노에서 시작한 그의 음악의 결은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를 통해 하나의 우주를 만들었다.
어린아이와 고양이를 사랑했던 그의 순수한 마음은 <어미 거위 모음곡>으로, 오스트리아의 왈츠에 대한 감흥은 <라 발스>로 흘렀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담긴 라벨의 커다란 호기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빛나고 있다.

writer.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관현악의 연금술사
모리스 라벨

프랑스 대표하는 관현악의 대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년). 그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땅이지만 바스크의 마을이었다. 프랑스어로 말해도 되고 바스크어로 말해도 되는 곳이다. 이를테면 캐나다의 퀘벡 같은 곳이다. 라벨의 아버지는 스위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바스크계 여인이었다. 그는 태어난 지 석 달 후에 부모님을 따라 파리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시부르는 이 위대한 작곡가의 고향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 지금도 시부르에는 라벨 생가가 잘 보전되어 있고, 라벨의 이름을 딴 공원과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파리지앵으로 성장했던 라벨은 14세에 뛰어난 음악 실력을 인정받았다.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 당시 유명한 음악가였던 가브리엘 포레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특히 피아노와 작곡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는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등을 이 시기에 작곡했다. 당시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우던 학생들의 목표는 로마 대상 수상이었다. 음악가로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로마 대상은 오늘날로 치면 올림픽 금메달, 야구로 치면 그랜드 슬램과 같다. 그러나 부정 심사 사건에 휘말려 라벨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첫해 2등 수상을 제외하고, 두 차례의 도전에도 결국 로마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드뷔시를 존경하다

1900년부터 라벨은 젊은 예술가, 시인, 비평가, 음악가들과 함께 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자신들을 예술적 소외자라 부르며, 다양한 예술에의 방법을 모색했다. 이들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마누엘 데 파야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던 드뷔시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드뷔시를 꼽았다. 라벨은 “드뷔시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프랑스 전통과 어울리는 고유의 규칙을 만들었다”라며 드뷔시의 음악을 극찬했다. 그러나 라벨 자신은 드뷔시의 상징과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렇게 10년간 음악적 친구로 잘 지내던 드뷔시와 라벨의 인연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 프랑스 시부르에 있는 라벨의 생가

  • 라벨의 악보 <라 발스>
    출처_프랑스국립도서관(https://gallica.bnf.fr)

샴고양이 집사의 슬픔

라벨은 늘 사랑에 빠져 지냈으나 평생 독신이었던 베토벤처럼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과 남성 모두와 연애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난히도 고양이를 사랑했다. 여러 고양이 가운데서도 샴고양이만을 길렀다. 고양이들을 몹시 아낀 그는 고양이의 말을 이해하고 할 줄도 알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그는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를 일정 신호로 나누고 그 의미를 찾았다.
1916년에 그는 프랑스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에게 동화를 주제로 한 오페라의 음악을 청탁받았다. 어린이를 좋아했던 라벨은 흔쾌히 이 작업을 승낙했지만, 세계대전 중이라 이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9년이 지난 1925년 3월 21일에 콜레트의 대본과 라벨의 음악은 판타지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으로 탄생했다. 오페라의 인기 아리아인 ‘야옹 듀엣’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라벨의 마음이 듬뿍 담긴 노래다. 1막의 마지막 즈음에 검은 수고양이와 하얀 암고양이가 등장, 함께 부르는 이중창 ‘야옹 듀엣’이다. 실제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라벨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희망했던 공군으로 입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운전병으로 전쟁을 치렀는데, 이후 그는 평생 이 시기의 끔찍한 시간들로 고통받았다. 그러다 <쿠프랭의 무덤>을 발표하며 다시 작곡에 매진했는데, 이때부터 그는 대표 피아노 작품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과 그의 관현악법을 총망라한 <라 발스>, <볼레로>를 발표하며 건재를 증명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사고 후 4년가량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제104회 정기연주회>에서 만날 수 있는 라벨의 곡

어린이를 위한 라벨의 선물 ㅣ 어미 거위 모음곡

라벨은 1908년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모음곡으로 이 작품을 작곡했다. 그의 친구인 시파 고데프스키 부부의 자녀 미미와 장의 연주를 위해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여러 어린이 동화에서 모티프를 삼았다. 이후 1911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 버전을 발표했다. 다음 해 그는 이 작품의 발레 버전도 편곡해 발표했다. 이 작품은 총 5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2곡에서 4곡 악보에는 원작 동화의 인용문을 적었다. 이것은 그가 이 작품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을 담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증거다.

우아하고 격정적인 라벨의 춤곡 ㅣ 라 발스

라벨의 작품 중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제목처럼 춤곡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라벨은 이 작품을 오랜 기간 스케치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1919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발레를 위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성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 라벨도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왈츠에 대한 인상에서 작곡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레 작품으로 작곡했지만, 라벨의 아이디어들은 점점 대규모 형식의 관현악곡으로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이 작품은 서주, 7개의 변주, 재현부로 구성된 대형 관현악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정작 디아길레프는 라벨이 오랜 기간 공들인 새 작품이 발레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왈츠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 자체의 왈츠라는 이유였다. 이를 계기로 라벨은 디아길레프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1929년 안무가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이 작품에 발레 안무를 입혀 발레 작품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또 라벨은 이 작품을 피아노 독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관현악곡 세 가지 버전을 구상해 발표했다. 그중 피아노 버전은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해 피아니스트에게 어려운 곡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이유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에서 자주 들어볼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제104회 정기연주회

    일       시 2024년 5월 14일(화) 19:30

    장       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협연 최수열 / 소프라노 황수미

    문       의 02-6712-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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