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➊

채우고 비우는

모래의이야기

신하림 샌드아트 작가

한 번만 보고도 가슴 깊이 선연하게 남는 작품이 있다. 신하림 샌드아트 작가의 작품이 그랬다. 손에서 모래가 미끄러지듯이 흐르는 순간 꽃이 피었다가, 달이 뜨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작은 모래 알갱이로 채웠다가 비웠다가 반복하는 그의 작품은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writer. 최행좌 photo. 황지현

빛과 모래의 예술

샌드아트(Sand Art)는 말 그대로 모래로 그리는 예술이다.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모래 조각, 유리병에 색색의 모래를 담아서 만든 작품이 바로 샌드아트다. 그리고 라이트박스(샌드 테이블) 위에 빛과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샌드아트에 속한다.
신하림 작가는 빛이 나오는 라이트박스 위에 모래로 이미지를 그리면서 이야기를 전하는 샌드아티스트다. 그는 샌드아트로 영상 제작이나 라이브 공연을 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등 스펙트럼을 넓혀가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우연히 샌드아트 공연을 봤어요. 어릴 적 모래 놀이를 하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모래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그림이 그려지고, 감동이 전해지는 그 과정이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 한순간 손짓에 장면이 사라져 버리는 거침없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우리의 삶도 매 순간 채웠다가 비워지잖아요. 샌드아트는 삶의 과정이 녹아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 샌드아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빛나는 라이트박스 위에 모래가 흩뿌려진다. 움켜쥔 모래를 조금씩 흘리면서 선을 긋는다. 매끄러운 선을 한 번에 그리기보다는 여러 번 터치해서 명암을 조절하기도 하고, 모래를 뿌리거나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이 된다. 그가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작은 모래들은 그의 손을 통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그림으로 탄생한다. 마치 마술 같기도 한 그림은 단순한 ‘형상’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장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완성작보다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모래로 전하는 스토리텔링

손으로 직접 모래를 만지고 느끼면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그의 손끝에는 늘 모래가 묻어 있다. 그에게 샌드아트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언제, 어떻게든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점이에요. 회화는 무언가를 계속 더하고 더해서 작품을 완성하는 반면 샌드아트는 그리고 지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다. 어떤 메시지를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예술이다. 모래 위의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토리를 구상하는 과정이 힘든 과정이라고 한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간략하게 스토리를 구성해요. 그리고 장면마다 제가 표현할 수 있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단 스케치해요. 그런 다음 화면에 직접 모래로 그려보면서 스토리를 짠 장면마다 이미지들을 그려보는데요. 장면과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작업을 진행해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고 끝날 수도 있지만, 어떤 장소를 배경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등장시켜 임팩트 있는 화면을 연출하고 다음 장면으로 스토리가 이어질지 생각한다.
“샌드아트는 섬세함이 필요한 예술이에요. 그래서 사막 모래를 사용하는데요. 다른 모래에 비해 입자가 고운 편이고, 부드러워서 작품을 표현할 때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죠. 만약에 더 섬세한 표현이 필요하면 이쑤시개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훨씬 섬세해지더라고요.”

해미국제성지 미디어전시관 영상의 한 장면, 2024. / 사진 제공_ 신하림 작가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샌드아트는 영상으로 접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샌드애니메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감동적이었어요’라고 이야기할 때 정말 내가 샌드아트를 하길 잘했구나 싶어요.”
그는 샌드아트가 어떤 장르의 예술과도 잘 어울린다는 게 무척 특별하다고 한다. 2019년 가수 홍경민의 <그대가 그대라서> 뮤직비디오에 함께 참여한 것도 샌드아트가 가진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곡을 들었을 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느낌을 주제로 스토리를 구상했고, 주인공 남자가 되어서 편지를 써 보았죠. 그 편지의 내용이 초안이 되어서 <그대가 그대라서> 샌드아트 뮤직비디오가 완성됐어요. 샌드아트는 음악과 함께하면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는 최근에 해미국제성지 미디어전시관 영상작업을 마무리했다. 미디어 전시관의 화면 크기가 약 가로 15m, 세로 3m 되는 와이드한 규모로,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던 작품이다. 작품 규모 때문에 샌드아트 라이트박스도 새로 제작했다.
“배경과 인물을 따로 작업하여 움직임을 준 샌드아트 미디어아트 작품인데요. 제 샌드아트 작품이 미디어아트로 제작된 최초여서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서산시 해미지역 일대 천주교 순교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 이야기라 작업을 하면서 감정이입도 많이 되었죠. 그분들의 얼굴 표정을 묘사할 때는 눈물이 울컥 나오기도 한 작품이에요. 이런 작품에 제가 참여할 수 있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샌드아트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에요.”#

  • 가수 홍경민 <그대가 그대라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2019. / 사진 제공_ 신하림 작가

  • 라이트박스에 모래를 뿌리는 모습

한순간 손짓에 장면이 사라져 버리는 거침없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우리의 삶도 매 순간 채웠다가 비워지잖아요. 샌드아트는 삶의 과정이 녹아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 샌드아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 모래시계를 샌드아트로 표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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