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스틴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클래식이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이미 많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
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의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꿈을 꾸게 해준다. 마치 밝게 반짝이는 신생별을 바라
보며 따라가듯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안내를 받는다.
writer. 한정원 클래식 칼럼리스트
건반 위의 마법사
니콜라이 기르셰비치 카푸스틴
긍정의 피아니스트 카푸스틴
사람이 만들어낸 악기 가운데 최고 발명품은 ‘피아노’라고 한다. 하얗고 까만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사람의 열 손가락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음색은 우리를 끝없는 무한대의 음악 세계로 이끌어주곤 한다. 러시아의 음악가 니콜라이 기르셰비치 카푸스틴(Nikolai Girshevich Kapustin, 1937~2020년)은 지금껏 누구도 가보지 못한 피아노 연주의 세상을 열어준 ‘긍정’의 피아니스트라고 할 만하다.
그는 1937년 11월 22일 우크라이나 고를로프카에서 태어났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자인 그는 모스크바음악원에서 유명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타티야나 니콜라예바와 함께 공부했다. 일찌감치 1950~60년대에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큰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재즈 피아노의 왕’으로 불리던 오스카 피터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올렉 룬드스트렘의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그는 러시아 전역의 많은 투어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1980년, 그는 정식으로 러시아 작곡가 연합의 회원이 되었고, 1984년부터는 프리랜서로서 창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는 전통 클래식의 구조 안에 재즈의 표현 방식을 녹여낸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고, ‘모든 것은 악보에 있다’라고 명명하면서 즉흥 연주에 대한 관심에 선을 그었다.
클래식에 재즈를 입히다
카푸스틴의 음악에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 낯설기만 하지도 않다. 느닷없이 던져지는 딱딱 떨어지는 신나는 리듬, 타악기처럼 두들겨대는 선명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 듣는 이는 어느새 그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다. 그 사이에서 타고 오르는,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멜로디 소리가 아주 흥미롭다. 이처럼 카푸스틴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클래식이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이미 많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의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꿈을 꾸게 해준다. 마치 밝게 반짝이는 신생별을 바라보며 따라가듯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안내를 받는다. 그의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작품들처럼 한 마디 안에서 쳐내야 할 음표들이 절대적으로 많아, 연주자에게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주를 듣는 이에게는 모든 음들이 선명하고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특징을 선사한다. 그만큼 그의 그루브는 아주 놀랍게도 마법을 거는 듯한 황홀한 매력이 있어 우리는 절로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재즈 시대의 미국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무조의 독창적 하모니와 리듬은 맑고 투명하며 밝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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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음악가 니콜라이 기르셰비치 카푸스틴
(Nikolai Girshevich Kapustin, 1937~2020년)은
지금껏 누구도 가보지 못한
피아노 연주의 세상을 열어준
‘긍정’의 피아니스트라고 할 만하다.
영원한 마에스트로
카푸스틴이 1974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4>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힌다. 총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원래 현악기와 빅밴드 그리고 피아노를 위해 그가 작곡했으며, 본인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함으로써 세간에 알려졌다. 옥타브를 많이 사용하면서 동시에 8개 이상의 음들이 어우러지며 내는 화음은 독특하면서도 다채롭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블루스적 서정, 가끔은 변덕스럽고 불규칙한 리듬, 자주 등장하는 멋진 호른 파트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러온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 Major>가 연상되기도 하며, 때로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조지 거슈윈의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주 시간은 16분 남짓이다.
이후 카푸스틴은 1980년 차이콥스키 홀에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4>를 연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녹음과 작곡에만 전념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20년 7월 2일 82세로 영면했으며, 총 161개 작품을 남겼다.
독일의 유명 뮤직저널리스트인 얀 브라흐만은 2020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 카푸스틴의 음악을 두고 “오른손으로는 밝고 명쾌한 싱커페이션(당김음)을 노래 화음에 실어서 연주하고, 왼손으로는 사랑을 듬뿍 받은 행복한 개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악보 위의 8분 음표들을 신나게 쳐댄다. 마치 그 엄청난 바흐의 프렐류드처럼 말이다. 그것은 속속들이 우아함이 느껴지는 피아노 작품들이며, 들을수록 매혹적이며 선명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음악 안에서 위트가 충만한 건강한 사고를 지닌 열린 예술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위상은 확고한 것이 되었다.#
<제172회 강남마티네콘서트>에서 만날 수 있는 카푸스틴의 곡
재즈를 입은 클래식, 장엄하고도 마법 같은 음악 ㅣ<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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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4> 는 카푸스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제1악장(Allegro molto)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건반 위를 빠르게 종횡무진하는 피아노 소리와 화려한 관악기 무리가 서로 경쟁하듯이 주고받는 패시지는, 그 어우러지는 화음만으로도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클래식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마지막 박자의 악센트 또는 테누토 등이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곡을 들으면 거슈윈의 ‘I Got Rhythm’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카푸스틴만의 멋진 전조를 듣는 즐거움도 느껴볼 수 있다.제2악장(Andante)은 모든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유니크하며 독창적인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은 안단테의 사랑스러운 선율로 시작된다. 그렇다고 템포가 그리 느리지 않다. 마치 1950~60년대 추억의 영화를 보는 듯이 황홀한 감성이 느껴진다.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빠른 템포가 들어온다. 피아노 선율에 보사노바, 부기-우기, 블루스 재즈 리듬이 가미되어 더욱 흥미롭다. 장조에서 단조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장조로 돌아오는 후반부의 구성은 실로 천재적이다.
제3악장(Rondo Toccata. Vivace)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웅장한 느낌을 준다. 테크닉으로는 3개 악장 중에 가장 어렵지만 그만큼 멋진 곡이다. 빠른 템포로 끊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흥미로운 추격전은 이상하리만큼 조화롭게 들리는데, 여기서는 바흐의 토카타가 연상된다.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오프닝 음악을 듣는 듯 매력적이다. 알고 들으면 더욱 매력적인 마에스트로 카푸스틴의 작품이 좀 더 널리 연주되기를 기대한다.
제172회 강남마티네콘서트
일 시 2024년 12월 5일(목) 11:00
장 소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관 람 표 전석 15,000원
관람연령 취학아동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