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아침부터 신명 나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해 보니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만큼은 가수 임영웅, 송가인이 되는 논현2동 복합문화센터 노래교실 수강생들이다.
writer. 최행좌 photo. 신현균
문화센터를 대표하는 최장수 노래교실
매주 수요일 오전이면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논현2동 복합문화센터. 주민들을 위해 요가, 필라테스, 발레 같은 운동부터 유화, 수채화, 스케치 같은 미술까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노래교실은 명실상부 이곳을 대표하는 수업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노래를 잘 몰라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상관없다.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나 환영받는 곳이니까.
“지금은 문화센터마다 노래교실이 있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노래교실이 여기뿐이라 청담동, 압구정동, 삼성동에서 배우러 오기도 했어요. 여기 노래교실 만큼 역사가 깊은 곳도 없을 거예요. 참 오래됐죠. 한때는 수강생이 300명이 넘었어요. 여기 좌석이 250석인데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서 배울 정도였으니까요.”
최양자 씨는 노래교실 창단 멤버로 웬만해선 노래교실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혈 수강생이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다니기 시작한 게 이렇게 오래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 못지않게 노래교실에 대단한 애정을 쏟고 있는 이가 있다. 27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권견화 씨가 주인공이다.
“노래도 노래지만 수강생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수강생들의 안부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매주 한 번씩 나왔는데,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끈끈한 정이 쌓이더라고요. 아마 저 혼자였다면 못했을 거예요. 함께하는 수강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노래교실 수강생들은 “주민들도 사귈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일주일에 한 번뿐이라 수요일이 마냥 기다려져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율동과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레 흥이 나서 모든 스트레스와 고민이 한꺼번에 확 날아간다고 한다.
오늘은 나도 송가인, 임영웅처럼
노래교실은 올해 3월부터 장수연 강사가 맡으면서 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었다. 여느 노래교실처럼 이곳에서도 가곡이나 팝,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배우는 데 에너지 넘치는 장수연 강사와 열정이 넘치는 30여 명의 수강생이 찰떡 호흡을 이룬다.
이 중 수강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단연 트로트다. 트로트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장르다. 수많은 곡을 배우며 불러온 수강생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궁금했다.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소리’, 설운도의 ‘사랑이 이런건가요’,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 금잔디의 ‘인생샷’, 김용임의 ‘내장산’, 송가인의 ‘한 많은 대동강’ 등 끝도 없이 술술 나왔다.특히 최양자 씨는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소리’를 인생곡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여기서 갈고닦은 노래 실력으로 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노래교실에서 자신도 미처 몰랐던 끼와 열정으로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노래교실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발성이나 호흡 같은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음정, 박자 등 노래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김미자 씨는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창법이나 발성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복식호흡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디테일하게 알려주세요. 선생님 덕분에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게 느껴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장수연 강사는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밝고 행복한 얼굴을 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요. 하나를 가르쳐 주면 또 열을 아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오죠. 스펀지처럼 잘 흡수하는 수강생들 보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가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정신 씨는 “전에는 주변에서 노래 좀 해보라고 하면 어디를 가더라도 마이크를 잡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는데, 노래교실에 다니고 나서부터 앙코르 요청이 쏟아져요. 이제는 한번 부르면 몇 곡씩 자신 있게 부르게 됐어요. 이렇게 내 인생이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라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노래 실력도 쌓고, 화합도 다지고
수강생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일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일석삼조라고 자랑한다. 이러니 노래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여기에 단합도 잘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노래교실의 분위기메이커를 담당하는 장미애 씨는 혼자서 열 명의 몫을 해내며 화합을 이끈다. 리액션이 좋은 것은 물론 열정이 넘치는 모습으로 노래교실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물하고 있다. 마라톤에도 러닝메이트가 있듯이 그는 노래교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물 같은 존재임이 확실하다.
“딸이 아이를 낳아서 산후조리를 해줄 겸 왔다가 노래교실이 있는걸 보고 우연히 들렀어요. 그런데 수강생분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분위기도 밝고 좋더라고요. 다른 문화센터를 다녀봐도 여기만큼 화합이 잘 되는 곳이 없더라고요.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듯이 친구를 따라서 노래교실에 온 윤영숙 씨는 “아이들을 키울 때는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는데 노래교실에 다니면서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다 정이 넘치는 수강생들이 있어서예요. 아마 그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블랙홀처럼 헤어나올 수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웠다. 그래서 그는 요즘 노래교실의 홍보요정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면 “노래교실에 같이 가요. 진짜 좋아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한다.
끈끈한 정으로 똘똘 뭉친 수강생들을 보며 권견화 씨는 요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250석을 가득 채우는 게 목표예요. 신입 수강생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니 언제든지 와주세요.” 서로를 배려하는 단합된 수강생들 덕에 ‘최고의 프로그램’, ‘최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노래교실. 열정 가득한 수강생들과 함께라면 객석이 가득 찰 날이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노래교실’ 수업이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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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견화 | 논현동
혼자 부르는 노래보다 여럿이 부르면 시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수강생들과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정말 원 팀처럼 느껴지는데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수강생들과 함께 노래교실이 더 번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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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자 | 상도동
노래가 가진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노래를 통해 마음을 치유받기도 하고, 힐링하기도 해요.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확 날아가고요. 그 맛에 노래교실을 꾸준하게 다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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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신 | 논현동
수요일마다 수강생들을 보면 잘 지냈는지 안부가 궁금해서 항상 물어봐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처음 제가 노래교실에 나왔을 때 낯설지 않도록 살갑게 챙겨주는 수강생들이 있어서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제는 제가 수강생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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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숙 | 논현동
평소에 활동적인 편이라 이것저것 배우고 있는데요. 노래교실이 있는 수요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운동을 하고 여기에 나와요. 정말 노래 반주가 나오면 어깨가 들썩들썩하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요. 흥이 절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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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 | 논현동
노래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인 수강생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보니 정말 가족처럼 느껴지는데요. 힘든 일이 있을 때나 고민이 있을 때면 내 일처럼 도와주는 수강생들 덕에 큰 힘을 얻고 있어요. 정말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노래교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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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애 | 경기도 부천
노래는 인생을 즐겁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율동하고 나면 땀이 날 정도예요. 열정을 다하는 장수연 선생님, 수강생들과 함께 2시간 노래를 부르고 나면 진짜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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