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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종소리

종은 두들기고, 치고, 흔들어서 아름다운 음향을 내는 기구다. 눈으로 종을 본 기억은 드물어도, 종소리는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다. 성당과 사찰의 종소리, 음식점 문을 열 때 울리는 작은 종소리, 주문을 위해 울리는 전자벨 소리까지 다양한 종소리가 우리의 일상을 채운다. 이 중 풍경은 ‘사람을 깨우친다’라는 의미를 담은 종으로, 수행자의 나태함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보통 풍경에는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이 매달려 있는데, 이는 물고기가 잠들 때도 눈을 감지 않듯이 수행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법당의 처마 끝이나 탑의 옥개석 위에 풍경을 매단다. 나도 얼마 전 알고리즘의 인도를 받아 ‘풍경 ASMR 영상’을 보고난 뒤, 현관문에 풍경을 매달아 두고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writer. 이슬찬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 옛 보신각 동종, 높이 3.18m / 출처_국립중앙박물관

  • 33번의 울림, ‘제야의 종소리’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저마다 새해를 알리는 행사가 펼쳐진다. 영국 런던에서는 빅 벤(Big Ben)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새해 마지막 숫자를 외치며 불꽃놀이를 즐기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에펠탑(Eiffel Tower)과 개선문(Arc de Triomphe)에 모여 새해를 축하한다. 우리나라는 보신각(普信閣)에서 열리는 타종 행사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상징적인 행사로 여겨진다.
    지금은 3·1절이나 광복절, 개천절, 제야의 종 행사처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보신각 동종을 울린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보신각 동종은 시간을 전하는 도구로 매일같이 종소리를 울렸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도성문이 열고 닫히는 시간이었다. 도성문을 닫는 28번의 종소리는 인정(人定)이라 하여 밤의 시작을 알렸고, 도성문을 여는 33번의 종소리는 파루(罷漏)라고 하여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이처럼 보신각 종소리는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오늘날 제야의 종소리는 33번 울리는데, 이는 조선시대 하루를 알리는 파루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문화는 1946년부터 계속되었다. 원래는 명동성당과 경주 에밀레종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각기 다른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다가, 1959년부터 매해 보신각에서 제야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제야 행사 때 치는 종의 횟수도 처음에는 제각각이다가 지금은 33번으로 굳어졌다.

박물관으로 간 ‘보신각 동종’

현재 보신각에 걸려있는 동종은 1985년에 새로 주조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동종이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타종을 견디다가, 1979년 3·1절 기념타종 이후 금이 가며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보신각 동종은 오랜 세월 동안 기구한 역사를 겪었는데, 1398년(태조 7년) 처음 만들어진 종은 임진왜란 때 종각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1619년(광해 11년) 지금의 보신각 자리에 종루를 짓고 원각사에 있던 종을 옮겨 달았으니, 이 종이 바로 1985년까지 보신각을 지키던 동종이다. 이 동종은 1468년(세조 14년)에 만들어져 정릉사라는 절에 있다가 원각사로 옮겨졌고, 원각사가 폐사되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종루에 안착했다. 옛 보신각 동종은 이제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서 살펴볼 수 있다.

⦁ 현재의 보신각과 동종/ 출처_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이 천명을 받은 지 3년 만에 한강 북쪽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 이듬해에 비로소 궁궐을 지었으며, 그해 여름에 담당 관사에 명하여 큰 종을 주조하게 하였다. 종이 완성된 뒤에 큰 시가에 종각을 세우고 종을 달았으니, 공업을 이루었음을 기록하고 큰 경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예로부터 국가를 세운 자가 큰 공을 세우고 대업을 정립하면 반드시 종과 솥에 명(銘)을 새겼으니 그 아름다운 소리가 견고하여 후세 사람들의 이목을 고무시켰다. 또 사통팔달의 큰 도읍 한가운데에 아침저녁으로 종을 쳐서 백성들의 일하고 쉬는 시한을 엄하게 하니, 종의 쓰임이 큰 것이다.

- 『동국여지지』 권1, 경도 한성부, 궁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런던의 빅 벤이나 파리의 에펠탑처럼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에서 이루어지는 전야 행사들과 비교하면, 보신각에서 행해지는 제야의 종소리가 조금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불꽃축제가 보신각 제야 행사를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보신각의 종소리는 불꽃놀이와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파루의 33번 치는 종소리는 불교의 33천(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석천(帝釋天)이 이끄는 하늘의 33천에게 고하여, 하루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고자 한 것이다. 나도 올해는 보신각에서 울려 퍼지는 33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모든 이의 번뇌가 사라지고 모든 가정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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